광활한 우주를 바라보는 인류의 시각은 끊임없이 진화해왔습니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에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로, 그리고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는 믿음에서 무수한 은하가 존재하는 드넓은 우주로.
이 모든 세계관의 대전환 속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우주 팽창'입니다.
그리고 그 팽창의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 것이 바로 '허블-르메트르 법칙'입니다.

단순히 공식 하나로 요약될 수 없는 이 법칙은 인류의 우주적 서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 법칙의 발견은 우주의 정적인 상태를 믿었던 20세기 초 과학계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아인슈타인조차도 우주가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 방정식에 '우주 상수'라는 임의의 항을 추가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허블-르메트르 법칙은 우주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역동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며,
빅뱅 우주론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단지 천문학적 발견을 넘어, 인류가 우주의 시작과 끝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허블-르메트르 법칙의 탄생: 우주 대논쟁의 종지부
허블-르메트르 법칙의 이야기는 20세기 초 천문학계의 가장 큰 논쟁, 즉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많은 천문학자들은 밤하늘의 희미한 나선형 성운들이 우리 은하 내부에 존재하는 가스 구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윌슨산 천문대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100인치 후커 망원경을 이용해 안드로메다 성운을 관측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세페이드 변광성'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 세페이드 변광성은 헨리에타 리비트가 발견한 '주기-광도 관계' 덕분에 그 거리를 계산할 수 있는 '우주의 표준 촛불' 역할을 했습니다.
허블은 이 변광성을 이용해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가 우리 은하의 지름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 밖에 존재하는 '외부 은하'라는 결정적인 증거였으며, 우주에 무수히 많은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우주 팽창의 증거: 적색편이와 후퇴 속도
허블의 이야기가 전부일까요?
사실 허블-르메트르 법칙의 이론적 기반을 먼저 제시한 인물은 벨기에의 물리학자이자 사제였던 조르주 르메트르였습니다.
그는 1927년, 은하들의 '후퇴 속도'가 그 은하까지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이론을 먼저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은 프랑스 학술지에 프랑스어로 실렸기 때문에 당시 주류 과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2년 뒤인 1929년, 허블은 동료 천문학자 베스토 슬라이퍼의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은하의 거리와 후퇴 속도 사이의 비례 관계를 실제로 관측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우주의 팽창은 풍선 표면의 점들이 서로 멀어지는 것과 같다.
이 비례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V = H₀D 라는 간단한 공식이 됩니다.
여기서 V는 은하의 후퇴 속도, D는 은하까지의 거리이며, H₀는 '허블 상수'라고 불리는 값입니다.
이 허블 상수는 현재 우주가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이며, 그 역수는 대략적인 우주의 나이를 추정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는 이 법칙은 우주 공간 자체가 팽창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허블 법칙이 허블-르메트르 법칙이 되기까지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허블의 발견이 발표된 후 수십 년 동안 이 법칙은 단순히 '허블의 법칙'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르메트르의 선행 연구가 재조명되면서, 그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2018년, 국제천문연맹(IAU)은 공식적으로 이 법칙의 이름을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개명하며 두 과학자의 위대한 협력과 발견의 역사를 기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과학적 진실과 함께 연구의 공정성에 대한 인류의 성찰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과학적 진보는 언제나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쌓여 진실의 퍼즐을 완성한다.
허블-르메트르 법칙은 우주론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발견이지만, 현재에도 허블 상수의 정확한 값을 두고 '허블 텐션(Hubble Tension)'이라는 심각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초기 우주 관측을 통해 예측된 값과 현재 우주 관측을 통해 측정된 값이 미묘하게 다른 이 현상은, 우리가 아직 우주에 대해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허블-르메트르 법칙은 우주를 이해하는 문을 열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미지의 문을 열어 인류의 탐구심을 계속해서 자극하고 있습니다.
연도 | 핵심 용어/발견 | 설명 |
1912 | 베스토 슬라이퍼의 관측 | 대부분의 나선 성운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적색편이'를 통해 발견. |
1923 | 에드윈 허블의 안드로메다 관측 |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 외부 은하의 존재를 증명. |
1927 | 조르주 르메트르의 이론 | 은하의 후퇴 속도가 거리에 비례한다는 이론적 관계를 최초로 제시. |
1929 | 허블의 법칙 발표 | 관측 데이터를 통해 은하의 후퇴 속도와 거리의 비례 관계를 증명. |
2018 |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개명 | 국제천문연맹(IAU)이 르메트르의 선행 연구를 인정하여 법칙의 이름을 변경. |